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케산 전투 (문단 편집) === 악전고투 === [[파일:2504035517.png|width=500]] 하지만 아무리 돈 많은 미군이라곤 해도, 최전선의 보병들은 열악한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당시 케산 지역은 비가 자주 와서 방공호는 습기를 잔뜩 머금어 축축했고, 물은 심하면 하루에 반컵 정도만 배급되었기 때문에 목욕은 고사하고 면도조차 할 수 없었다. 빨래는 가끔씩 빗물을 받은 드럼통에 대충 헹구는 걸로 해결하는 등 위생은 [[개판 5분전]]이었다. 게다가 어디서 나온 건지 참호에는 쥐들이 들끓었으며, 시체를 갉아먹거나 자는 사람도 물어뜯어서 권총으로 쥐를 잡는 보직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더구나 케산은 고지대라서 은근히 추웠는데 미군 대부분은 야상 같은 건 보급 받지 못해서 판초우의만 입고 버텨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북베트남군의 포격 때문에 미 해병대는 방공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부상병들도 심각한 중상이 아니면 치료 후 다시 원대복귀를 시켰고, 중상자들도 후방으로 후송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을 방불케 하는 이런 전장에서 미 해병대는 [[PTSD]] 환자가 급증하였다. [[파일:5d5ef41f2dc42.image.jpg|width=500]] 앞서 말한 항공 보급도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기엔 수송기가 비행장에 착륙한 후 화물을 하역시켰으나 북베트남군이 수송기의 이착륙 때를 노려 공격을 해댄 대다가, 포격 덕에 활주로에는 온갖 위험한 잔해들이 뒹굴고 있었기 때문에 활주로를 달리는 상태에서 화물을 내던지고 다시 이륙하는 걸로 바뀌었다. 현대의 미군이 사용하는 [[https://en.wikipedia.org/wiki/Ground_Parachute_Extraction_System|저공 낙하산 사출법]]이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마저도 피해가 커지자 아예 공중 투하로 변경되거나 심지어 보급이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물론 북베트남군의 대공화력이 미 항공세력을 저지하기에 부족했던 건 사실이지만, 툭하면 안개가 끼던 당시 케산의 상황상 수송기들도 전폭기들의 호위 없이 무리하게 접근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실제로 [[C-130]] 수송기들의 손실이 누적되자 2월 12일자로 운영을 일시 중지하고 2주간 [[C-123]]으로 대체하기까지 했다. [[파일:keshan41.jpg|width=500]] 거지꼴의 미군들은 화물이 내려지거나 북베트남군의 근접 포격으로 활주로가 손상될 때마다 벙커나 진지에서 튀어나와 북베트남군의 포탄이 날아오기 전에 부리나케 일을 끝마쳐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북베트남군의 포격에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미군 병사들도 상당했다. 게다가 유사시를 위해 배치된 헬리콥터 상당수도 파괴되었으며 공세 초기 미군의 탄약고가 포탄에 피격되어 1,500톤중 1,100톤의 탄약을 잃어버리기까지 하였다. 특히 유일한 지상 보급로인 9번 도로는 진작에 북베트남군에 의해 차단되었기 때문에 미군 입장에선 기지를 사수하기 위해선 항공보급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치트키]]를 친 미군이라서 저정도였지, 가진 건 사람밖에 없었던 북베트남군의 상황은 말그대로 [[생지옥]]이었다. 디엔비엔푸 전투에 참전했던 북베트남군의 베테랑 장교와 병사들도 그때보다 더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이들의 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제대로 된 방공호에서 몸을 피할 수 있었던 미군들에 비해 북베트남군 병사들은 대충 판 참호 속에서 저 엄청난 폭격을 맞고 계속 죽어나갔다. 전투 직후 후방으로 돌려진 북베트남군 사단들 중에는 사상률이 '''80%'''나 되는 부대도 있었다. 저 정도면 재충원이고 뭐고 그냥 부대가 사라진 수준. 그래서 북베트남군 역시 PTSD에 걸린 병사들이 많았으며 이 당시 참전했던 북베트남 노병들은 하나같이 미군의 폭격에 대해 치를 떨었다. 양측의 상황이 이렇게 개판이다보니, 나중에는 양측이 오히려 전투를 기피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북베트남 측은 포격뿐만 아니라 저격수들을 배치하여 눈에 띄는 미군들을 사살하는 전법을 썼고, 미군은 역저격을 하거나 아예 무반동포를 이용한 정밀 포격으로 대응했다. 물론 저격수를 사살해도 그 자리는 금방 다른 저격수가 배치되어서 다시 미군을 공격하는, 끝도 없이 반복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런 와중에 어느 미 해병대 병사가 일주일 동안 자신의 진지 쪽을 향해 배치된 상대방 저격수의 행동을 살펴본 결과, 이 저격수가 [[가라|일부러 사람이 없는 곳에다 반복해서 사격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 병사는 저 저격수가 사람을 쏘는 순간 곧바로 역저격이나 포탄에 죽을 게 뻔하니 일부러 오조준을 하는거라 추론하고 이를 지휘관에게 알렸는데, 이 지휘관도 '저 착한 저격수를 죽여버리면 다른 놈이 배치돼서 우릴 쏠 테니 그냥 살려 두는 게 좋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일부러 오조준을 하는 저격수에겐 아예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대로 쐈다'는 의미로 깃발로 신호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파일:800px-L_B_Johnson_Model_Khe_Sanh.jpg|width=500]] [[린든 존슨|존슨]]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어떻게든 케산이 '제2의 디엔비엔푸'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백악관 상황실에 케산 기지의 모형판을 가져다 두고 매일마다 전황을 체크했다. 하지만 [[구정 공세]] 내내 최후방이었던 미 대사관까지 공격당하는 등 남베트남 전역이 [[개판]] 상황이어서 구출 작전은 계속 지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